지역주의 특효약이냐 허울 좋은 맹탕이냐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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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선거구제 개편 효과 싸고 갑론을박
 
여권이 ‘선거제도와 지역구도 문제’를 연이어 들고 나오고 있다. 지난 7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 선거(구)제도 개혁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지역분할 구도를 깰 수 있는 제도라면 무엇이든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도 지난 8월4일 당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지역주의 극복’을 강조했다.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8월3일 아예 ‘지역구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특집 기획으로 내세웠다. 선거구제로 지역 구도를 깰 수 있다고,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나선 셈이다.

여권에서는 현행 소선거구제도가 지역주의를 고착화한다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로 ‘특정 정당이 과대 대표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8월3일자 청와대 브리핑이 인용한 김영태 교수(목포대·정치학)의 논문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따르면,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지역 대표성을 독점하는 정치 구조가 거듭되었다. 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7대 선거까지 주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따져보면, 15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서 득표율 42.4%를 기록한 신한국당은 67.1%의 의석점유율을 기록했고, 호남지역에서 지지율 71.6%를 기록한 국민회의는 호남 전체 의석 가운데 1석을 제외한 97.3%의 의석을 석권했다. 지난 17대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영남에서 51.3% 득표율로 88.2%의 의석을 가졌고, 열린우리당은 호남에서 54.3% 득표율로 80.6%의 의석을 차지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양상으로 사표(死票)가 대량 발생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선거구제 개편밖에 방법 없다”

지난 8월3일 참여정치실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표적 논객인 유시민 의원, 노회찬 의원, 시사평론가 진중권씨, 정해구 교수(성공회대·정치학)도 ‘지역주의가 한국 정당 정치의 최대 걸림돌이고, 선거구제 개편이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뜻을 같이 했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지역주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정치권에서 대안으로 논의되는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이 과연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묘수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선거구를 확대해 한 선거구에서 의원을 여럿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가 지역 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탐독해 화제가 되었던 <한국의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를 쓴 강원택 교수(숭실대·정치학)는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할 경우, 오히려 소지역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도 2개 이상 시·군이 합쳐진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자기 시·군 후보에게 몰표를 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선거구가 커지는 중대선거구에서는 ‘소지역주의’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는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지지율에서 몇십 퍼센트 차이가 나는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가 동반 당선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정당 복수 공천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 선거구를 특정 정당 후보가 싹쓸이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소선거구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점 현상’이 완화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해서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전 한나라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권오을 의원은 최근 17대 총선 결과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시abf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개 권역으로 나누고 해당 권역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권의원은 현재 지역구 2백43석, 비례대표 56석의 의석수를 지역구 2백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한 후 17대 총선 당시 득표율을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입해 결과를 산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15석을 얻을 수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다. 결국 ‘반쪽짜리’ 지역 구도 해소법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행정구역 개편이 차라리 낫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경우에도 ‘한나라당의 호남 진출 효과’는 낮게 나왔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나누는 방식이다. 김형준 교수가 17대 총선 결과를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22석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영남과 호남에서 오로지 1석씩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당은 39석의 비례대표 의석(지역구 의석 포함 41석)을 얻을 수 있어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도입될 경우 최대의 수혜자가 된다. 김교수는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3%대인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를 실시해도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지역주의 완화 효과는 미미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론적 문제말고도 선거제도 개편으로 가는 데 현실적 난관은 산적해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이견이 있다. 신기남·임종인 의원 등은 ‘선거구제 개편보다는 정책 경쟁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아예 선거구제 개편이 지역주의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연정이나 선거구제 개편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 자체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국회의원 선거가 3년이나 남은 지금 시점에서 적절하지도 않고,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해보았지만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효과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선거구제 개편말고 현재의 광역시·도를 40~60개 시로 나누는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8월3일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의원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하자고 주장했지만, 이는 위헌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에 나설 의원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장애물이다. 정해구 교수는 “여·여 타협을 위해 의원 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의원 수가 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비판이 있지만 지역주의 해소 효과를 따지면 사회적 비용을 오히려 줄이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국민의 시선이 두려워 누구 하나 이런 주장을 꺼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선거제도와 지역주의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학자들 사이에 해법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이 논의를 공론화하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여야 사이에 본격적으로 논의가 불붙을지도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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