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있는 곳에 유해 폐기물 있다?
  • 녹색연합 미군기지담당 고이지선 ()
  • 승인 2005.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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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2만8천여 곳 오염시켜…미국에서도 암 유발 등 피해 속출

 
전세계에 7백개가 넘는 군사 시설을 두고 있는 미국. 미군은 1년에 3백50조원이 넘는 돈을 국방비로 쓰고 있으며 미군기지는 미국 세력을 확장하는 첨병 구실을 한다. 그러나 최근 안팎에서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보건 악화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7월 14~16일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제2회 ‘군기지 환경에 관한 회의(The Military Toxics Conference)’에서는 미국 내 13개 지역과 오키나와·필리핀·한국 등 해외 참가자들이 미국 내 기지를 포함해 전 세계 미군기지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환경 정화 의무를 등한시하고 정화 예산을 삭감하는 미국 국방부를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미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군은 군사 시설 1만1천 군데에서 2만8천여 지역을 오염시켰고, 매년 미국 화학 회사들보다 5배나 많은 유해 폐기물을 쏟아낸다. 명실상부하게 미국에서 가장 큰 환경 오염원이다. 사격 훈련, 무기 생산과 폐기, 기지 운영과 같은 군사 활동으로 주변 주민들이 독성 물질에 노출되었고, 상수원·지하수·대기·토양이 오염되었다. 미국 정부는 CERCLA(미국의 환경 복구ㆍ배상 책임법, 일명 슈퍼펀드법) 법으로 오염 정화 우선 지역을 선정해 오염 정화 예산을 우선 투입하도록 하고 있다. 슈퍼펀드라고 불리는 오염정화우선지역 중에서 81%가 군사 시설(1995년)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신속한 정화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국방부 “환경 정화에 편성할 예산 없다”

그러나 이번 회의 참석자들은 미국이 쏟아 붓는 국방비와 기지 건설 비용을 고려하면 환경 정화에 편성할 돈이 없다는 것은 지역사회 환경과 주민 건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국방부가 자체 환경정화 프로그램을 마치고 폐쇄 기지를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없애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위스콘신 주 CSWAB(Citizens for Safe Water Around Badger)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확장되었던 배저(Badger) 탄약공장 폐쇄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9백40만평에 달하는 배저 탄약공장은 50년동안 로켓추진제 등 각종 탄약을 생산했다. 1975년 이후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총56건 기록되었는데, 육군은 1991년 시설 유지 보수에 1천7백만 달러, 환경 정화에 1만1천9백 달러를 사용했다. 2003년에는 인근 그루버스 그로브 만의 수은에 오염된 1만2천 평을 정화하는 데 6백만 달러를 들였다. 그러나 최근 검사 결과 납과 다른 독성 물질 오염도가 과거와 비슷해 정화작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주 보건 당국 조사에서 탄약 공장 주변 주민들의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다. 림프종·신장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미국 평균보다 50%나 높게 나타나, 탄약 공장이 주위 환경과 보건에 미친 악영향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현재 CSWAB는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탄약고 야외 소각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2000년 폐쇄 후에도 군 당국은 오염 정화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탄약고를 소각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을 절감하려고 국방부가 추진하는 소각 방식은 건물에 사용된 페인트에 함유된 PCB 오염이 우려된다. PCB 오염 물질을 소각할 때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다이옥신과 같은 물질이 배출된다. PCB는 미국에서 1929년 처음 만들어졌는데, 1978년 발암물질로 판명되어 생산이 금지된 물질이다.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는 멕시코 국경과 가까워 멕시코인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도시 남서쪽 지역의 90%가 멕시코계 사람들인데 1995년 BRAC(Base Realignment and Closure; 기지 통폐합 계획. 1981년부터 네 번 시행해 주요 기지를 4백여개를 폐쇄했음)으로, 2001년에 폐쇄된 켈리 공군기지가 있다. 5백만평이 넘는 이 기지는 미국 공군기 엔진의 50%를 생산하던 중요 기지인데, 핵물질도 다루었다. 이 기지는 마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북 켈리 기지로 나뉘는데, 1990년대 초반부터 주민들 건강 문제가 대두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성인의 90%, 어린이 75% 이상이 복합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동 켈리 기지 주변 주민의 45%가 각종 암을 앓고 있다. 2004년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동 켈리 지역의 절반에 가까운 가정이 암 질환 환자를 가족 구성원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1993년부터 주민들을 조직하고 조사 활동을 해온 SouthWest Workers Union의 루벤 솔리스는 이것이 환경차별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군 당국이 멕시코계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이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2006년까지 기지 내부에 대해서만 환경 오염 정화를 실시하고 이 부지를 매각할 예정이다. 토양·지하수 오염이 외부와 지역 주민의 건강에 미친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이면서도 인구가 두 번째로 적은 알래스카에는 군사 시설 때문에 오염된 지역이 7백 군데나 된다. 에스키모인들이 생계를 위해 사냥과 낚시를 하던 지역은 이제 사격장, 군부대 쓰레기 매립장 등으로 안전하게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주민들은 리처드슨 육군기지 주변 이글 강의 수질을 오염시키고 만여 개가 넘는 불발탄을 방치한 국방부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페르시아 만 전쟁 때 최전선에 있던 군인 중 50%가 유색 인종이고(열화우라늄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많음), 미국 내에서 열화우라늄 생산·시험장이 대부분 유색 인종과 빈민 주거 지역에 세워진 것도 군의 환경 오염이 소외 계층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미국 내 주요 기지 33개를 폐쇄하려는 2005년 BRAC 계획을 완성할 예정이다. 기지 폐쇄를 둘러싸고 지역 경제를 이유로 반대하는 지역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환경과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기지를 폐쇄하고 정화·보상하라는 주민들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주민들은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국방부가 오염 지역과 시설을 철저히 정화하고 그에 관한 환경·보건 조사 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미국 국방부가 기지 통폐합 계획을 계속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군기지 환경 정화와 보상을 둘러싼 국방부와 주민들의 싸움은 미국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미군기지 반환과 확장이 진행되고 있다. 미군기지 환경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필리핀·한국·오키나와 등 미군 주둔국과 비에케스·하와이 등 미국이 식민지화 한 영토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군 기지 환경 문제가 소외 계층에 더욱 심각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해외 주둔 국가 환경 문제 해결에 더욱 불성실한 미군의 태도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해 주둔국의 환경과 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해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미군이 진정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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