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차 위기, 누가 조장하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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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내분-강경파 무리수 연발'이 직접 원인...네오콘,일본 우익 이해 일치

 
한반도 상황이 다시 요동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강석주 방중 이후 5월 중순까지 전개된 긴장 국면을 ‘1차 위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잠시 휴지기를 거쳐 ‘2차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든 듯하다. 5월25일 미국 국방부의 미군유해발굴단 철수와 26일의 스텔스기 한국 배치 결정, 5월29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체니 부통령의 악담, 북한의 반발, 엉뚱하게 유탄 맞은 6·15 평양 통일축전 등이 최근 연쇄적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1차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 산 밑이 아닌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누가 왜 위기를 조장하는가.

1차와 2차의 공통점과 차이점 : 1차와 2차를 비교해보면 매우 놀랄 만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북한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내분이 원인이라는 점이다.

1차 때를 보자. 4월 초 강석주 부상의 베이징 방문이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고 북한이 의도적 실력 행사로 접어들었을 때, 미국 네오콘이나 국방부는 오히려 침묵을 지켰다. 그런데 정작 미국 국무부가 북·미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타협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즉 4월26일 베이징 방문 직후 힐 차관보가 북·미 뉴욕 채널을 가동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면 타개 움직임이 보이자, 미국 언론과 일본 언론을 동원한 북한 핵실험설 및 대북 선제공격설 등 언론 플레이가 본격화했다. 즉 미국 국무부의 대화 노선을 저지하기 위한 네오콘과 국방부의 방해 움직임이 바로 1차 위기의 실체였던 것이다.

 
2차의 경우는 북한이 1차 때만큼의 빌미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노골적이다. 북·미 양국의 대화 채널을 통해 모종의 긍정적인 사인이 오고가는 듯하자, 이에 반발하는 강도 역시 거세진 것이다. 이번에는 언론을 통하지 않고 럼스펠드와 체니가 노구를 이끌고 직접 무대에 뛰어올랐다.

최근 상황을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5월 초 급상승했던 한반도 위기지수는 5월8일 북·미 양자대화에 대한 북한 외무성 성명과 그 다음날 이에 화답하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13일 뉴욕에서 북·미 접촉이 이루어졌고, 5월16~19일 남북 차관급 회담이 타결되면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듯했다.

북·미 양측의 대화 채널 간에는 고무적인 사인이 오고가기도 했다. 5월2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5월13일의 뉴욕 접촉과 관련해, 때가 되면 북한의 입장을 미국측 채널을 통해 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6자 회담 복귀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묘하게도 일본 산케이 신분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한  5월22일자 보도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경제 지원과 북·미 양자 대화를 보증하는 것을 전제로 북한이 조만간 6자 회담 복귀를 결단할 것이라고 전한 것이다.

 
산케이 신분은 미국 국무부 움직임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기사를 내보냈다. 5월26일 자에서 ‘6자 회담에 정통한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할 경우 미국은 회담 하루 또는 이틀 전 장시간에 걸쳐 북·미 양자 협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될 경우 6자 회담 본회의보다는 오히려 그 전에 열리는 북·미 대화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 국무부가 6자 회담보다는 북·미 양자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어서 매우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런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처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이때였다. 즉 5월25일 미국 국방부는 럼스펠드 장관의 지시에 따라 북한에서 벌여온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을 갑자기 중단하는 조처를 발표했고, 26일에는 F117 스텔스 폭격기 15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미국은 인도주의적 사업은 어떤 국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유해 발굴 사업은 미국 내 유가족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9년간 꾸준히 벌여온 대표적인 국책 사업이기도 하다. 북·미 관계가 긴장되었을 때도 계속해온 사업을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려는 시점에 갑자기 중단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더군다나 북한 지도부 및 핵 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 용도인 스텔스기를 느닷없이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나선 데에까지 이르고 보면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바로 이 시점을 전후해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및 네오콘은 다분히 ‘미국식 파워게임’ 양상에 접어들었다. 국무부의 경우 직접 대응을 피하면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을 대타로 내세웠다. 5월26일 니혼 게이자이 신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의 동의나 일본의 지원 없이 미군 단독의 대북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못박는 한편,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대처에 따라서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북한 방문도 있을 수 있다’면서, 미국은 북·미 대화 재개와 관련해 ‘일체의 전제 조건이 없다’고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힐 차관보의 방북이 가능하다는 그의 발언은 산케이 신분 보도의 연장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미국 국방부 움직임과는 정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국무부의 대담한 해법과 국방부의 긴장 고조 책략이 충돌하는 내분 상황이 또다시 재현된 것이다.

부시·라이스 대 체니·럼스펠드?: 이즈음 워싱턴 정가에는 라이스 국무장관과 럼스펠드 장관 간의 불화설이 나돌았다. 럼스펠드 장관이 미군유해발굴단 철수와 F 117 스텔스기 한국 배치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 국무부와 협의 없이 독단으로 결정한 데 대해 라이스 국무장관이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유해발굴단 철수나 스텔스기 배치 등은 실무적으로는 럼스펠드 장관의 소관이지만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라이스 장관과 협의했어야 했다. 이를 생략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들고 올라간 데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이 강력하게 반발한다는 얘기가 나도는 와중에 이번에는 체니 부통령이 등장했다. 즉 5월29일 CNN과의 대담에서  느닷없이 김정일 위원장을 겨냥해  ‘국민의 빈곤과 굶주림을 방치하는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지도자 중 하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강경파가 북한을 자극하기 위해 즐겨 쓰는 수법을 사용한 것인데, 럼스펠드의 무리수를 지원 사격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럼스펠드에 이어 체니 부통령까지 무리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의 변화된 위상에 대한 얘기가 워싱턴에 떠돌기도 했다. 부시 1기 정부에서는 체니나 럼스펠드 모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국무부를 통제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된다는 것이다. 즉 라이스에서 힐로 이어지는 정책 결정 과정을 흔들 수가 없어 언론을 통한 외곽 때리기 아니면 자신의 직권을 활용한 간접 수단에 의존하다 보니 무리한 행태가 나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쨌든 체니 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확전 양상으로 접어든 이후 부시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5월31일 백악관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MR. 김정일’ 이라고 호칭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군대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모든 선택 방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만 외교적으로 풀 방법들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라는 것이다. 요는 체니와 럼스펠드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라이스 국무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체니는 왜 목소리를 높이나 :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체니와 럼스펠드가 근래 들어 목청을 돋우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북한 체제 및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반감 내지 강경한 입장 때문에? 이렇게 본다면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경우 라이스의 입지가 너무 단단해질까 봐? 조금 낫지만 그것만 가지고 최근의 이상한 돌출 행동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유는 뭔가? 워싱턴과 베이징의 정보 소식통들은 이들이 그동안 일본과 맺어온 ‘부적절한 관계’에서 근원적인 동기를 찾기도 한다. 체니 부통령의 경우 지난해 4월 일본 방문을 통해 일본의 우익화와 군사대국화를 부추겼고, 이 과정에서 체니나 럼스펠드 두 사람 모두 미국과 일본 군산복합체와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으리라는 것이다. 일본 우익들에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야심을 심어준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는 얘기이다.

이런 기본 구도를 놓고 다시 그림을 그려보면 제법 명료해진다. 그들은 왜 라이스와 충돌하는가? 사실 부시 대통령이나 라이스 국무장관 모두 지난해부터 이들의 권력 남용이나 금전적 유착 문제 등을 경계하고 거리를 두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점은 일본 문제에 대한 라이스 국무장관의 석연치 않은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즉 3월19일 일본 방문에서는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발언했지만 3월20~21일 중국 방문 때 거센 항의를 받은 이후 4월7일 시린 타히르 켈리 국무장관 선임보좌관을 통해 지지 철회 의사를 밝혀, 일본 열도를 충격의 늪에 빠뜨렸다.

일본이 다시 체니 부통령을 붙들고늘어지자 체니 부통령은 ‘고객’에 대한 성의 표시 차원에서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외교가 일각의 분석이다. 이때부터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북한 때리기와 한반도 위기설을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것이 병행되었다는 가설이다. 1차 위기가 정점에 올라 있을 때인 지난 5월4일 체니가 아베 신조 자민장 간사장 대리와 회동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지한다고 발언한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공교롭다.

 최근의 무리수는 바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둘러싸고 6,7월에 벌어질 대회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분석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일본과 독일 인도 브라질 등 G4 국가들이 지난 5월18일 제출한 유엔 상임이사국 확대 개혁안에 대해, 6월 유엔 총회에서 기본 결의안  채택, 7월 중순 새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선출, 그리고 2주 뒤 유엔헌장 개정이라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체니와 럼스펠드와 일본 우익, 이 3자 간에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명분 중 하나인 북핵 위기가 이 사이에 해소되거나 극적 타결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두 사람이 체면 불고하고 직접 움직인 까닭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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