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형 공무원들 희망의 땅 일구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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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성화/함평, 벤치마킹 대상 1호로 떠올라

 
퀴즈 하나. 전남 함평에는 본래 나비가 많았을까? 정답은 ‘결코 아니다’이다. 지금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비 축제의 산실로 알려져 있지만, 축제가 생기기 전인 1999년 이전만 해도 함평과 나비 사이에는 별 다른 인연이 없었다. 

어디 나비뿐인가? 남들이 삼다(三多)의 고장, 삼보(三寶)의 고장 따위를 내세울 때 함평은 삼무(三無)의 고장이라는 열패감에 시달렸다. 천연 자원, 산업 자원, 관광 자원. 뭐 하나 신통한 것이 없는 지역이 함평이었다. 번듯한 공장은 고사하고 하다 못해 그 흔한 국보급 유물 한 점, 절 한 채가 없었다. 기껏해야 외지인들은 ‘함평 고구마 사건’(1976년)이 일어났던 척박한 땅으로 이곳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랬던 함평이 오늘날 압도적 지지율로 ‘지역 특성화 사업을 가장 잘 추진하고 있는 전남·광주 지역 기초 단체’ 1위(37.8%)로 꼽혔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군민들에 따르면,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석형 현 군수(47)이다. 함평역에서 함평군청까지 가는 길에 만난 택시 기사 정정희씨는 “이군수가 함평을 확 바꿔 버렸지라”며 열변을 토했다. 

광주KBS PD 출신인 이씨가 함평군수에 처음 당선된 것은 1998년. 김두관 당시 남해군수(현 청와대 정무특보)와 더불어 전국 최연소 단체장으로 화려하게 군청에 입성하기는 했지만, 취임 이후 이군수에게는 불면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함평을 어떻게 먹고살 만한 곳으로 바꿀 것인가.’

새벽마다 함평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산봉에 올라 고민을 거듭하던 이군수는 어느 날 동네 초입을 흐르는 함평천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쳤다고 한다. ‘저 쓸모없이 버려진 하천변을 꽃밭으로 가꿔 관광객을 불러모아 보자.’ 

그러나 군수가 내놓은 아이디어에 군청 공무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군수는 젊음과 뚝심으로 자신의 구상을 밀고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꽃과 나비를 결합해 보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하천가에 심으려는 유채꽃은 이미 제주도의 고유 브랜드였지만, 유채꽃을 보고 날아드는 나비를 브랜드화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축제 날짜도 절묘하게 정해졌다. 본래 나비는 6월이 제철이다. 그러나 이군수는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전후해 축제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에게는 동심을, 어른에게는 추억을’. 이같은 카피를 내걸고 출발한 나비 축제는 첫해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나비 축제 성공 이어 친환경 농법 개발

올해 7회째를 맞은 나비 축제를 다녀간 사람은 총 1백60만명. 1회 축제 때 다녀간 50만명을 비롯해 그간 관광객이 나비를 보러 와 쓰고 간 돈은 연간 2백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부수 효과에 불과하다. 나비 축제의 최대 효과는 군민들이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함평군청 이재균 비서실장은 말했다. 덕분에 오늘날 군민들 사이에는 ‘우리는 1년에 명절을 세 번(설날·추석·나비 축제) 치른다’는 농담이 오간다. 그만큼 살림살이에 윤기와 여유가 흐른다는 뜻이다.

 
‘함평산 농산물=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또한 나비 축제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함평군 또한 친환경 농법 쪽으로 농민들을 유도하고 있다. 한 예로 나비 축제 때 함평을 방문하면 유채꽃 못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이 자운영 꽃밭이다. 천 평이 넘는 밭에 심어진 보랏빛 자운영 꽃은 노란 유채꽃과 어울리며 그 자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BR>
그렇다고 자운영이 관상용인 것만은 아니다. 이주헌 농산과장에 따르면, 자운영의 궁극적인 용처는 비료이다. 자운영 꽃이 진 뒤 이를 퇴비로 활용하면 농약을 적게 치고도 알찬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자운영에 다량 함유된 뿌리혹박테리아가 천연 비료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나비 축제에서처럼 오리지널리티에 연연해 하지 않고 복제물을 새로운 브랜드로 승화하는 함평군의 도전 정신은 농산물 분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 예로 복분자는 전북 고창의 특산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건 말건 함평군은 복분자를 ‘레드 마운틴’이라는 고급 와인으로 재가공해 연간 2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백련 또한 바로 옆 동네인 전남 무안의 특산품으로 유명하지만 함평군은 아랑곳 않고 백련차 브랜드를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대봉감을 얼려 만든 ‘아이스 홍시’ 또한 함평군이 자랑하는 벤처 상품. 탈삽 기술(떫은 맛을 제거하는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이 제품은 요즘 할인 매장, 홈쇼핑, 골프장 휴게실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석형 군수는 이런 함평의 기적을 이룬 밑바탕에 ‘PD형 공무원’이 있었다고 자평한다. 공무원들이 바뀌지 않았다면 나비 축제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PD 출신 군수의 지휘 아래 기획 마인드로 새롭게 무장한 이들은 지난 일곱 번 축제를 매번 참신한 프로그램으로 채워내는 창의성과 기동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이미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 1호로 떠오른 함평군은 올 초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2008 함평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를 계기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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