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발린 담양 떡갈비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05.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석제의 음식정담]

근자 “진짜 갈비에 다른 살코기를 붙였다 해도 진짜 갈비의 함량이 가장 많고 성분 함량 표시를 정확하게 했다면 ‘갈비’로 볼 수 있다”라는 판결이 나와 감동해 있던 차에 마침 갈비를 먹을 일이 생겼다. 그것도 그냥 갈비가 아니라 떡갈비다. ‘굿모닝 대숲 쌀’의 고장 담양에서 말이다.

원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판에 원조라는 말이 아예 없는 곳으로 후배는 시인과 나를 데려갔다. 그게 원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 후배는 나중에 계산까지 했는데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앞으로 한국 문학을 이끌고 갈 거목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 곳은 남도별미집 16호로 전남도지사가 지정한, 1963년 창업한(개업이 아니다, 이 역시 감동적인 자부심 아닌가), 제2, 3, 4회 남도음식대축제에서 청결상과 대상을 수상한, 떡갈비뿐만 아니라 추어탕과 죽순요리, 대나무통요리도 함께 하는, 읍사무소 곁에서 50여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온 식당이다. 청결상을 먼저 수상하고 다음해에 대상을 수상했다는 게 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반찬이 많고 손질이 많이 가는 한식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조건은 위생과 청결성이니까.

관공서 옆에는 왜 고깃집이 많았을까

읍사무소 곁에 있다는 것도 연구해볼 만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낯선 곳에 가서 괜찮은 음식점을 찾을 때는 일단 관공서 옆에 가는 게 상식이었다. 관공서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경찰서 옆의 음식점은 경찰관과 피의자가 자주 시켜먹는 육개장이나 설렁탕 같은, 국물과 밥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많고 세무서나 행정관서 옆에는 방이 나뉘어져 있거나 칸막이가 있는 한정식 집이 많다(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공무원들이나 민원인들은 남의 눈이나 방해 없이 먹는 정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공통적으로는 불고기나 갈비, 삼겹살같이 씹히는 게 많은 육고기집이 많았다. 지금은 육고기집이 어디에나 다 있게 되어서 변별력이 없어졌지만 1963년쯤 읍사무소 옆에다 ‘창업’한 곳이면 좀 먹는 듯이 먹는 육류를 위주로 하는 식당이었을 거라는 게 1963년에 마당을 기어다니며 닭똥을 주워먹고 있던 나의 편견이다.

 
내 편견이야 어떻든 떡갈비집 주인 어른, 입구의 자그마한 쪽마루에 앉아 전화기와 카드결제기를 슬하에 두고 있는 그 할머니는 약간 무섭게 생겼다. 방에서 음식을 나르는 40대의 여종업원 역시 ‘할머니, 무섭다’고 했다. 모시고 간 시인께서 그 종업원은 손님과 농담하기를 좋아한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 좀 놀고 싶어하는 종업원이 배회하고 있고 수다한 손님들의 대화, 씻고 굽고 나르는 주방의 소음 사이사이에 정확하게 주문과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할머니의 말투도 좀(많이는 아니고, 그러면 누가 밥을 먹으러 가겠는가) 무섭게 진화한 것 같았다. 어떻든 할머니는 식당 주인의 관상을 음식 맛의 일부이자 판단 기준의 하나로 생각하는, 내가 알기로 이 시대 최고의 미식가인 시인에게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이 떡갈비집은 전라도의 다른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반찬이 다채로웠다. 김치는 양념이 진한 묵직한 맛이었고 부추김치가 특히 인기인 것 같았다. 전날 먹은 영암(이 곳은 ‘달마지쌀’의 고장이다, 말난 김에 더 하자면 ‘님바스모텔’이 있는 고장이기도 한데 달마지는 물론 ‘달맞이’에서 나온 것일 터이고 님바스는 영어로 하면 'I SAW MY LOVER'이리라, 아 이 땅 곳곳에 문학의 와룡봉추가 숨어 있다!) 월출산 아래의 짱뚱어탕이며 갈낙탕의 반찬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덜 짰다. 드디어 떡갈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떡갈비는 네이버 백과사전을 빌자면 ‘갈비살을 발라내어 곱게 다져서 양념하여 치댄 후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여 양념장을 발라가며 구워 먹는 구이요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왜 떡갈비인가 하면 만들 때 인절미 치듯이 쳐서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단다. 네이버 백과사전 선생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나간다.

‘갈비는 5㎝ 길이로 토막내어 기름기를 제거하고 살만 발라 차질 정도로 곱게 다진다. 다진 갈비살에 후춧가루·소금·생강즙을 넣고 골고루 끈기가 나도록 치댄다. 살을 발라낸 갈비뼈에 밀가루를 조금 바른 뒤 다져서 양념한 갈비살을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인다. 양념장은 냄비에 간장, 배즙, 양파 다진 것, 청주, 설탕, 참기름 등을 넣고 끓인 후 고운 체에 걸러 만든다. 뜨겁게 달군 석쇠에 떡갈비를 올려 애벌구이를 한 다음 기름솔로 양념장을 앞뒤로 발라가며 타지 않게 굽는다. 이때 떡갈비를 구우면서 양념장을 바르지 않고 미리 갈비살에 모든 양념을 하여 굽기도 한다···.’

원래 붙은 고기보다 갖다 붙인 고기 양이 훨씬 많았지만

주방에서 애벌 굽고 내온 떡갈비는 3인분으로 6개의 뼈, 뼈에 붙은 고기와 붙인 갈빗살이었다(1인분은 200그램인데 뼈의 무게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식탁 위에 있는 간이 가스버너에 올려져서 두벌 구워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갈비뼈에 원래 붙어 있는 고기의 양보다 갖다 붙인 고기의 양이 훨씬 더 많았다. 이것은 갈비인가, 아닌가? 우리 세 사람의 머리에는 같은 의문이 떠올랐을 게 분명했다. 갈비를 굽는 동안 후배가 얼마 전에 있었던 갈비·비갈비에 관련된 재판의 요지를 이야기했고 시인이 ‘거 참 우습네’ 하고 껄껄 웃었다.

그때 우리가 앉은 탁자 뒤 다른 자리에서는 한참 무슨 일인가를 가지고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연배가 환갑 이상에서 칠십객으로 보이는 어르신 대여섯 명이 무슨 비석이며 참가인원 문제를 가지고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자리가 갑자기 더 시끄러워졌다. 우리 자리에서 갈비 굽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요로콤 조로콤 말을 해싸봐야 시끄럽기만 하제.”
그 양반 말소리는 좌중의 시끄러움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엄청나게, 독자적으로 시끄러웠다. 그렇게 시끄러움이 진압된 뒤에 다른 양반이 작지만(소리가 작아서 그때까지 발언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다) 명확하게 그 말을 이어받았다.
“현다 안 현다 말을 해싸도 다 말뿐이랑게.”

그 말 이후의 말들은 해독 불능이었다. 나는 감동을 받으며 갈비뼈에 붙어 있다 떨어진 갈비를 주워서 먹었다. 양념장이 약간 단 것 같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감동적이었다. 뼈에 붙은 것은 약간 질겨서 벗겨서 씹는 맛이 있었고 붙어 있는 살은 굳이 힘들여 씹지 않고도 잘 넘어갔다.

전날 오후에 내 배낭을 들어본 시인은 내게 짐이 꽤 무겁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배낭이 제일 무겁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갈비뼈에 붙어 있는 살이 붙인 다른 살보다 많으면 갈비라고 부를 수 있다. 갈비뼈에 붙어 있는 갈비살과 발라낸 갈비살을 다시 붙여 떡갈비를 만든다. 배낭은 배낭 안의 짐과 합쳐져서 배낭의 총 중량이 된다. 한다 안 한다 아무리 말을 해봐야 다 말뿐이다. 가끔 세상 한 구석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건, 생각이 비슷한 사람, 논리가 비슷한 말이 한 곳에 모이는 모양이다. 볕 좋고 바람 따사로운 어느날, 담양 떡갈비 식당 같은 곳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