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터지게 싸우는 ‘박사모’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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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쟁에 형사 고소까지…박근혜 대표측 “개입할 수도 없고…”

 

‘남원정고, 찌질이 4인방은 당을 떠나라.’ 4·30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나라당 남경필·원희룡·정병국·고진화 의원의 홈페이지에 원색적인 비난이 폭주했다. ‘대표를 희롱하는 원히롱(원희룡), 오렌지 남겡필(남경필), 배신자 정병국, 구제불능 고진화’ 등 이들 의원의 홈페이지는 인신공격성 글로 도배되었다.  

소장파는 사이버 융단 폭격의 배후로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을 지목했다. 소장파는 박사모가 당을 박살 내는 ‘박살모’가 되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박사모와 소장파 간 공방의 발단은 처음에는 사소해 보였다. 카트 게임이 단초였다. 원희룡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재·보선이 치러진 4월30일, 원의원은 사무실에서 카트 게임을 하는 사진을 올렸다. 박사모 회원들이 이를 찾아내 문제 삼았다. ‘박근혜 대표는 손발이 부르트도록 선거운동을 하는데, 원의원은 앉아서 게임을 하느냐’며 박사모가 사이버 공격에 나선 것이다.

원의원측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인식공격성 글이 줄을 잇자 진상 파악에 나섰다. 재·보선 전부터 박사모가 사이버전을 준비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선거후 암적인 존재를 반드시 제거합시다.’(4월29일 박사모 게시판). 또한 박사모 회원들 간 대화방에서 펌객을 조직적으로 모집해, 소장파를 공격하자는 흔적도 찾아냈다. 소장파는 이번 공격을 계획적인 도발로 결론 냈다. 양측은 확전일로였다. 급기야 박사모-소장파 갈등은 소장파-박근혜 대표 간의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5월18일을 기점으로 박사모와 소장파의 싸움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박사모의 카페지기 정광용씨(47)가 회원들에게 화해하자고 전체 메일을 보내면서다. 정씨는 “국회의원들이 대응하면서 확전되었다. 평회원들의 거침없는 목소리를 자중시킬 필요가 있어서 중재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박사모의 공격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정씨가 노사모 ‘명짱’(명계남)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보여준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장파 공격은 정광용씨가 벌인 정치쇼’라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박사모 이벤트’라는 혹평이었다. 이런 평가는 소장파가 아닌, 같은 박근혜 팬클럽에서 나왔다. 5월20일 박근혜 팬클럽 연합체인 ‘애국애족 시민연대’(애실련)는 박사모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애실련 홍영인 대변인(51)은 “소장파의 비판은 한나라당을 위한 건설적인 비판이었다. 그런데도 박사모가 박대표의 치마자락만 잡고 늘어지는 맹목적인 충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홍대변인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정광용씨가 박사모 내부를 다지고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언론 플레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팬 클럽인인 ‘희망21’도 이번 사태를 ‘소장파와 정광용의 대립’이라고 단정했다. 희망21측도 소장파보다는 정씨에게 분란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박사모를 이야기하면서 정광용씨를 빼놓을 수 없다. 정씨는 전직 CF 감독 출신이다. 2000년에는 영화 <쿠>를 제작하려다 중단했다. 한때 프로덕션인 키스콤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탄핵풍으로 난파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호를 이끄는 박대표를 돕기 위해 2004년 3월30일 다음 카페에 박사모를 개설했다. 그때부터 그는 카페지기를 맡아 전적으로 박사모 활동에만 매달리고 있다. 박사모의 첫 사무실도 정씨가 무료로 제공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숙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사모 회원들 간에 9·18 대첩으로 일컬어지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까지 주도하며, 정씨는 박사모의 ‘짱’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박사모는 내분에 휩싸였다. 돈 문제가 불씨였다. 정씨가 활동비 명목으로 판공비를 요청했고, 운영진이 월 2백만원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정씨가 운영진도 모르는 직불카드를 사용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내분 이후 박근혜 팬클럽 22개로 분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씨가 황순철씨(61·아이디 영안경)를 박사모에서 활금(활동 금지)시킨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10월10일 산머루라는 아이디를 가진 인물이 황씨가 박사모 오프 모임에서 회원을 폭행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정씨가 황씨를 3개월 활동금지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황씨의 폭행을 처음으로 알린 산머루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맞았다는 회원도 찾을 수 없었다. 황씨는 이같은 처분을 평소 정씨에게 ‘쓴소리’를 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10월18일, 급기야 박사모 운영진이 정광용씨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체 회원들에게 정씨의 권한 남용과 돈 문제를 폭로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비대위도 만들었다. 정광용씨도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자신을 비판한 운영진을 활동 금지시키고 강제로 퇴출(강퇴)해 버렸다. ‘줄강퇴’가 이어졌다.

내분이 심해지자, 서울 지역장들과 전국 박사모 지역장들이 수습에 나섰다. 정씨와 정씨 문제를 폭로한 운영진 모두가 탈퇴하고 정상화하자는 요구였다. 하지만 정씨는 24명에 이르는 지역장들도 강퇴 조처했다. 이 사건으로 다음 카페에는 ‘박사모 비대위’가 생겨났고, ‘안티 정광용’ 카페도 생겼다.

이같은 사태가 있은 뒤 강퇴당한 회원들이 새 박근혜 팬 카페를 개설했다. ‘참박사모’ ‘희망21’ ‘나라사랑실천연대’ 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10월 내분을 겪으면서 박대표 팬 클럽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현재 팬클럽 카페나 사이트가 22개나 된다. 박근혜 팬클럽은 분화했지만, 애실련측이나 박사모 모두 연대에는 공감한다. 박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내분의 앙금은 지금도 남아 있다. 지난 2월 박사모 팬클럽은 연대 기구로 애국애족실천시민연대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 박사모는 들어가지 않았다. 애실련 홍영인 대변인은 “박사모에 참여를 권고했지만, 그쪽에서 거부했다”라고 말했다. 홍대변인은 안티 정광용 인사들이 포진한 애실련을 박사모가 껄끄러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분의 후유증은 온라인 상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형사 고소로 이어졌다. 강퇴당한 황순철씨가 지난해 10월8일 정광용씨를 명예훼손으로 영등포경찰서에 고소했다. 황씨는 “내가 이 나이 들어 카페장 욕심이 있겠냐. 있지도 않은 사실로 인격을 모욕당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30일에는 황순철씨와 안 아무개씨(아이디 하칸)등 일반 회원 4명이 정씨를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안 아무개씨(46)는 “박사모에 1억원대 돈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영수증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씨를 고소한 이들의 바람은 박근혜 대표에게 누가 되지 않게 정광용씨가 카페지기를 사퇴하는 것이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정광영씨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씨는 “판공비는 당시 운영진이 전부 찬성해서 지급받았다. 재정은 재정국이 담당해 투명하게 집행되었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정씨는 황순철씨 문제는 솔직히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명예훼손은 오히려 내가 당했다”라고 정씨는 덧붙였다. 명예훼손 사건은 지난 4월10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넘어갔지만, 공금횡령 사건은 현재 영등포경찰서가 조사 중이다.

박근혜 대표측도 박사모 내부 문제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다. 박대표측의 한 관계자는 “알아도 우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자발적인 팬클럽에 개입했다가는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19일 현재 박사모 회원은 3만4천여명. 이들은 지난 5월15일 워크숍을 열고 10만명까지 외연을 확장해, 한나라당의 책임당원으로 적극 가입하기로 결의했다. 박근혜 대표의 대권 가도에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선 내분을 수습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박사모는 조만간 회칙을 만들고, 회칙에 따라 회장을 뽑을 예정이다. 카페지기인 정씨는 회장 직에 출마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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