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은 노무현 부동산 불패 신화 깨나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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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가격 안정에 성공한 노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억눌린 부동산 시장이 ‘복수’를 할 수도 있다는데….

 
‘부동산 시장을 오버킬(overkill·과잉 진압)하더라도 투기는 막아라.’ 우수(2월18일)를 앞두고 기지개를 켜던 개구리가 기습 한파에 자취를 감춘 것처럼, 집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자 슬쩍 고개를 내밀던 투기 세력이 땅 속으로 숨어버렸다.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 강남 집값이 오르자 노무현 대통령이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2월25일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서라도 반드시 부동산 시장은 안정시킬 것이고 투기 조짐이 나타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겠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투기 세력과 벌일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투기 세력에게 치명타를 날릴 무기와 정보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올해 안에 투기를 뿌리 뽑을 부동산 관련 세제가 완비되고 전산화가 마무리되면 모든 부동산 거래가 100% 노출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노대통령은 모든 부처에 투기 근절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2월17일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와 협의 끝에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투기대책 발표 직후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불패’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뜻을 수 차례 밝힐 만큼 정부 의지는 확고하며, 관련 법규를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집값을 잡겠다”라고 말했다.
시장 원리에 어긋난 부동산 시장 억제책에 반대하는 이헌재 경제 부총리마저 “투기 조짐이 있으면 사전에 선제 대응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이부총리는 또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과거처럼 냉·온탕식 주택 정책은 채택하지 않겠다”라고 덧붙였다.

‘2·17 부동산 대책’의 골자는 세 가지다. 판교 신도시 일시 분양·초고층 재건축 아파트 불허·수도권 신도시 추가 개발이 그것이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주범을 확인 사살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겨 있다. 당초 6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시행하려던 판교 신도시 분양을 11월로 연기하되 아파트 2만1천 가구를 한꺼번에 분양하겠다고 나섰다. 네 차례로 나누어 시행하다 보면 판교 신도시 분양이 초래한 이상 과열 현상이 전체 부동산 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판교 로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판교 열풍은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며 수도권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는 판교로 쏠린 부동산 투자자들의 눈길을 분산하기 위해 양주 옥정지구, 남양주 별내, 고양 삼송에 판교 신도시에 버금가는 신도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또 서울 압구정동 재건축 단지가 추진하던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불허하고 주거지역 층고 제한 규정을 강화했다. 정부가 지난 1월 올해 하반기부터 층고 제한을 폐지하겠다는 의견을 흘리자 강남구청이 압구정동 재건축 단지에 60층짜리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다. 이 일대 아파트값이 곧장 수직 상승한 것을 물론이다. 2·17부동산 대책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시장을 풀어주려 했다가 깜짝 놀라 다시 고삐를 잡아챘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서슬에 놀랐는지 집값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한가롭게 시장 원리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 전문가조차 따라 가기 힘들 정도로 부동산 관련 법규와 제도를 바꾸었다. 동원 가능한 모든 부동산 억제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부동산 투기 세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5월부터 국세청·재경부·행정자치부·검찰까지 동원해 부동산 투기 진압 작전에 나섰다.
‘부동산만큼은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과거 정부의 온갖 탄압으로부터 살아 남은 부동산 투기 세력의 버티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강남 불패 신화’를 자랑하는 부동산 투기 세력은 신행정수도 후보지인 충청남도 연기·공주 지역의 땅값을 23%나 끌어올리는 투기 태풍을 일으키며 수도권으로 북상을 시도했다. 지난해 3월 분양한 용산시티파크에는 328 대 1이라는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증거금만 6조9천억원이 몰렸다. 분양 당시 1억5천만~10억 원이나 되는 웃돈이 형성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0월29일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부동산 투기 세력에 선전 포고를 했다. 부동산 시장을 오버킬한다는 비난이 일 정도로 부동산 종합대책의 화력은 막강했다. 우선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해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종합부동산세는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종합토지세 외에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토지와 주택 소유자에 대해 국세청이 별도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제도이다.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투기 가담자를 겨냥한 스마트 폭탄으로 집값 상승의 주원인인 부동산 가수요를 잡겠다는 계산이 그 이면에 깔려 있다.

또 주택거래신고제를 도입해 투기 세력이 주도하는 부동산 변칙 거래를 원천 봉쇄하고 부동산 실거래 가격 신고를 의무화했다. 전용면적 25.7평 이하 국민주택에 대해서는 건설 원가와 분양가를 연동하는 원가연동제를 도입해 분양가 상승을 억눌렀고, 주택 담보 인정 비율을 낮게 조정해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자금 흐름을 막았다. 여기에다 서울 강남 지역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재건축 단지의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1가구 다주택자에게 부과하는 양도세를 높였다.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지정해 투기 세력이 발 디딜 땅을 줄여 나갔다.

한 가지만 시행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이 발칵 뒤집힐 정책들이 총망라되어 쏟아져 나온 극약 처방이었다. 시장 원리는 무시되었다. 아니 부동산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했다. 당시 10·29 대책에 반대해 ‘왕따’까지 당했던 재경부 고위 관리는 “10·29 대책은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주택 건설 시장까지 오버킬할 소지가 충분했다. 투기적 거래가 사라진 것은 좋지만 정상 거래마저 끊길 정도로 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되었다”라고 말했다.

10·29 대책이 맹위를 떨친 지난해 말 미분양 아파트는 6만9천1백33 가구다. 2003년 3만8천2백61가구에 비해 80.7%나 늘어났다. 전년 대비 16.4%까지 치솟았던 2002년 집값은 지난해 -2.1%로 떨어졌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투기 광풍을 잠재우고 집값을 안정시킨 것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다. 수백조원이나 되는 국가의 부가 부동산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시장 원리를 말할 단계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안정책 시스템화 ‘큰 성과’


 
그러나 건설 경기 활성화만큼 경기 부양 효과가 큰 것이 없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이다. 건설 시장이 활성화하면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저소득층 가구의 가계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늘어날 소지가 크다. 노대통령도 2월25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부동산 투기와 건설 경기는 별개 문제라며 건설 경기를 진작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건설업이 내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일찍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늘려 건설 경기를 살리되 주택 정책만은 경기 부양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기본 원칙을 천명해 왔다. 김수현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기획운영실장은 2월22일 주택정책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주택 정책은 서민 생활 안정을 기본 목표로 운영하되 건설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면 한국형 뉴딜 정책처럼 사회간접자본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실장은 또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 예측가능성, 형평성을 높여 가수요와 정책의존형 시장 구조를 바로잡겠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은 보유세 과세 기준인 과표나 거래 부과 기준인 신고가액이 실거래 가격을 반영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실거래 가격으로 자산 가치를 평가해 부동산 관련 세금을 일제히 높인다는 방침이다. 또 부동산 보유 실태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보유세는 높게, 거래세는 낮게’ 부동산 세제를 바꾸고 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 정부가 사례 별로 개입하는 행정 조처를 동원한 것과 달리 노무현 정부는 제도와 법을 정비해 부동산 안정책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주요 정책들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면 부동산 투자를 통해 초과 이윤을 챙기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값 안정’을 칭송하는 목소리 못지 않게 노무현 정부의 마구잡이식 부동산 억제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투기억제책은 임시 변통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투기억제책은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이루어지는데, 실수요와 가수요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가수요는 미래의 실수요를 반영한다. 실수요자도 미래 집값 변동을 감안해 집을 사고판다. 실수요도 가수요적 요소를 포함하는 셈이다. 따라서 가수요를 억제하면 미래 주택 공급이 준다. 투기억제책이 나오면 분양률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간접 투자 권장해야 한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에는 손대지 말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판교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억지로 분양가를 낮추다 보면 분양 당첨자의 시세 차익이 커져 청약경쟁률이 높아진다. 판교의 경우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는 당첨되는 순간 당첨자가 투자 금액의 두 배를 챙기게 된다.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주택의) 공공성에 대한 강조가 시장 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은 문제다. 시장은 반드시 자율 조정한다. 한꺼번에 부작용이 나타나면 정부가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장은 선(善)이 아니다. 물론 사회 공리를 증가시키기 위해 시장의 기능을 제약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복수는 냉혹하다. 시장의 기능을 억누를수록 시장은 언제나 보복한다. 시장 원리를 무시하는 정책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주택 수요 억제책과 함께 부동산을 적정 이윤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대상으로 바꾸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부동산 투자자들을 위해) 이윤 동기에 대한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의 직접 투자는 억누르되 부동산 펀드 가입 방식에 의한 간접 투자는 권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집값 변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금리다. 금리가 낮으면 돈이 부동산으로 몰린다. 적정 이윤을 챙기기 위해 부동산 투자로 몰리는 이들을 모두 투기 세력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부동산이 건전한 투자 대상으로 정착될 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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