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마케팅 ‘남북 전쟁’ 불붙었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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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이 서울 명동에 최고급 명품관 에비뉴엘을 개장하면서 갤러리아 백화점 등 그동안 강남권에 쏠려 있던 소비 귀족들의 명품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상위 0.1%를 잡아라’. 한번 쇼핑에 나서면 1천만~2천만 원씩 현금 다발을 쇼핑 봉투에 넣고 다니면서 명품을 사가는 소비 귀족층을 놓고 서울 강남과 강북 사이에 ‘남북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 갤러리아백화점과 강북 롯데백화점이 마케팅 타깃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VVIP 고객 수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만 1만5천명 가량. 오랫동안 명품 마케팅을 해온 갤러리아백화점이 다이렉트 메일(DM) 마케팅을 펼치는 고객 수가 약 1만5천명이다.

 
선전포고는 롯데백화점이 먼저 했다. 국내 백화점 업계 1위 롯데백화점이 지난 3월25일 서울 소공동 본점 옆에 명품관 에비뉴엘을 개장한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서울 강남 갤러리아백화점으로 몰리는 국내 명품 고객들을 강북 명동으로 끌어들여 명품 시장을 나누어 가질 심산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에비뉴엘에 위협을 느끼며 ‘수성’ 전략을 짜느라 부산하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소비 귀족층이 밀집한 서울 강남 신사동과 청담동이 만나는 곳에 명품관을 운영하면서 명품 시장의 터주 대감으로 자리 잡아 왔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는 5천2백평 규모 매장에 명품 브랜드 100여 개가 입점했다. 서울 강북 지역의 명품 고객들을 1차 목표로 하고 차츰 강남으로 상권을 확대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이 에비뉴엘을 개장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입점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최고급 명품을 끌어들인 것이다. 에비뉴엘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뚜비용샵·마놀로블라닉·로열아셔와 같은 브랜드를 선보였다.

8억원 넘는 명품 회중시계 선보여

뚜비용샵은 최고가 시계 브랜드인 브레게를 비롯해 레온아트·브랑팡을 판매하는 스와치 그룹의 시계 매장이다. 마놀로블라닉은 미국 인기 가수 마돈나와 시트콤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카가 애용하면서 유명해진 구두 브랜드이다. 로열아셔는 엘리자베스 2세의 왕관을 제작한 보석 브랜드로 유명하다. 시계 멀티숍 크로노다임에는 8억2천만원이나 하는 예거 르쿨드르 회중 시계와 6억2천만원이나 하는 손목 시계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로열아셔 매장에는 1억6천만원이나 나가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진열되어 있다.

 
롯데백화점 하성동 해외명품팀장은 “지금까지 롯데백화점은 하드웨어는 좋지만 소프트웨어는 떨어진다는 평판을 받았다. 에비뉴엘 개장을 계기로 최고급 명품관을 운영하는 백화점으로 이미지를 일신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매장 공간을 빽빽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일균 갤러리아백화점 영업총괄팀장은 “에비뉴엘은 층마다 입점한 브랜드 수가 5개를 넘지 않고 곳곳에 휴식 공간이 많아 쇼핑 분위기가 쾌적하다”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에비뉴엘을 개장하면서 2천억원 가량을 투입했다. 해마다 매출이 2천억원이 넘어야 손실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수익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성동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장은 “에비뉴엘이 국내 최고급 명품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의 매장 운영 전략에 변화를 일으킨 주인공은 장선윤 롯데쇼핑 이사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이사는 롯데쇼핑에 입사한 이후 줄곧 해외 명품에 관심을 가져왔다. 장이사는 매출뿐만 아니라 입점 브랜드에서도 롯데백화점을 최고급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에비뉴엘을 열었다. 하성동 팀장은 “에비뉴엘 같은 최고급 명품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2천억원이나 들여 세계 최고급 명품관을 개장한 것은 오너 가족인 장이사가 꿋꿋하게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에비뉴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주변 상권이다. 국내 명품 고객 다수가 서울 강남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거주한다. 이 지역에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이외에 현대백화점 압구정동 지점이 있고, 청담동 로데오 거리에는 명품숍이 줄지어 있다. 갤러리아명품관 고객 77%가 강남 상권에 산다. 강북에 거주하는 고객 19%도 도심보다는 압구정동에 가까운 성동구·광진구·용산구에 사는 고객이 절반을 넘는다. 서울 성북동이나 평창동에 주로 사는 강북 상권 고객은 9%에 불과하다.

"손님 붐비면 명품 고객 뜸하다"

반면 에비뉴엘은 명동에 있어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명품 고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또 명동 일대는 유동 인구가 많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조용하게 쇼핑하기를 좋아하는 명품 고객들에게 유동 인구가 많은 것은 치명적이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얼마 전 에비뉴엘 영업실 중간 간부로 스카우트된 영업 직원을 따라 에비뉴엘 회원으로 가입한 한 명품 고객은 다시 갤러리아백화점으로 돌아갔다. 쇼핑백에 현금 다발을 넣고 다니며 명품을 구입하는 이 고객은 에비뉴엘 매장에 손님이 많자 물건을 사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오일균 갤러리아백화점 영업총괄팀장은 “명품관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야 한다. 갤러리아백화점에도 3~6시에 단골 고객 수명이 찾을 뿐이다. 지금도 백화점을 찾는 유동 인구를 줄이기 위한 묘안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0년 개장한 갤러리아백화점은 명품 전문관으로 자리 잡았다. 갤러리아백화점 동관은 1990년 9월 패션 전문점 ‘파르코’를 갤러리아명품관으로 재개점한 이후 16년 동안 해외 명품 브랜드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입점 브랜드 수에서 에비뉴엘을 압도한다. 동관과 서관에 각각 1백11개와 22개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켜 에비뉴엘(96개)보다 브랜드 종류가 많다. 

 
에비뉴엘은 주변 상권이나 고객의 접근성에서 갤러리아에 처진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에비뉴엘은 청담동 상권을 분석해 명품 고객이 자주 찾는 청담동 식당 두 곳(퓨전 일식당 타니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드레아)를 에비뉴엘 안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갤러리·아모레 스파·요가·네일숍을 입점시켰다. 노화방지 치료 전문점인 메디코스와 유명인이 자주 찾는 미장원 정샘물도 끌어들였다. 강남 명품 고객이 자주 찾는 청담동 상점들을 끌어들여 청담동 상권과의 연계성을 높이려는 의도다.  

에비뉴엘이 고객들을 메르세데스 벤츠로 ‘모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고객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갤러리아백화점으로 가는 고객을 최고급 승용차로 명동까지 데려오겠다는 뜻이다. 매장에 손님이 많아 쇼핑하기를 꺼리는 고객을 위해서는 프라이빗쇼퍼룸(PSR)을 운영한다. 2층과 4층에 각각 VIP와 VVIP 고객만 출입하는 쇼핑 공간을 만들고 버틀러(쇼핑 도우미)를 상주시켰다. 회원이 관심을 가진 제품을 주문하면 제품을 고객에게 가져온다. PSR는 지난해 3월 갤러리아백화점이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둔 바있다. 

애비뉴엘도 리모델링 통해 재개장 계획

내년 하반기에는 신세계백화점이 명품관을 개장해 에비뉴엘의 원군으로 나선다. 명동 상권을 놓고 롯데백화점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신세계백화점은, 지금 짓고 있는 신관을 오는 8월 개장하면 기존 본관 건물을 명품관으로 리모델링해 내년 하반기에 오픈한다. 에비뉴엘은 신세계 명품관으로 고객이 분산되는 것보다 명품 상권이 형성되어 강남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오일균 팀장은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와 쇼핑 편이성에다 벤츠와 PSR 서비스를 통해 고객 접근성까지 높인다면 중·장기적으로 에비뉴엘이 만만치 않은 경쟁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갤러리아백화점은 아직까지는 에비뉴엘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동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경쟁자로 꼽는다. 아직까지 매장을 찾는 손님 1인당 구매액(객단가)은 갤러리아백화점이 50만원 가량으로 7만~8만 원인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을 압도한다. 시설과 인테리어에서 에비뉴엘에 뒤진다고 판단한 갤러리아백화점은 조만간 리모델링을 거쳐 최고급 명품관으로 재개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명품관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들은 매장이 늘었다고 해서 본사에 주문량을 크게 늘리지는 않는다. 한정된 양을 서울 곳곳에 있는 백화점에 뿌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품 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한다. 오일균 팀장은 “한정된 물량을 명품관마다 나누어 공급하다 보니 제품 종류를 다양화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명품 고객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기존 시장을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명품관이 새로 등장하면서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까르띠에 시계를 차고 페레가모 구두를 신는 것을 ‘정신나간 짓’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 서울 강남에서는 선글라스·핸드백·구두 등 명품을 하나 이상 소지하고 활보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내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부자가 돈을 쓰는 것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명품 소비를 백안시하던 시각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명품 열풍에 힘입어 백화점 업계는 홈쇼핑과 할인점에 빼앗긴 생활용품에 주력하기보다는 명품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토양이다. 내수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제품이나 브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 국내 명품 시장이 확장된다면 그만큼 세계적인 인지도와 경쟁력을 갖춘 명품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보다 앞서 명품 시장이 발달한 일본에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명품 브랜드가 다수 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하성동 해외명품팀장은 “국내에서 일고 있는 명품 열풍과 잇단 명품관 개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산 명품의 출현을 앞당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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