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려죽을 뻔 했던 브라이언 아담스 공연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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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콘서트 공연료가 상당히 비싸지만, 인도에선 싼 편입니다. 뱅갈로르에 있을 때 브라이언 아담스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골드석이 6백루피(1만7천원쯤)여서 싼 맛에 갔지요. 그런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습니다.

공연 장소는 팰리스 그라운드라고 뱅갈로르에서 매우 큰 운동장이었습니다. 신문 광고나 팜플렛에는 공연 시작 시간은 없고, 입장 시간만 적혀 있었습니다. 서둘러서 5시까지 공연장에 갔지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표는 4백루피짜리와 6백루피짜리 두 종류가 있었는데, 6백루피짜리를 산 저와 일행은 비교적 줄을 짧게 섰습니다. 비싼 표라고 먼저 들여 보내주었습니다. 공연장에는 카메라, 핸드백, 음식 등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간 친구는 용감하게도 카메라를 몸에 숨겨서 무사히 입장했습니다.

공연장에 들어선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브라이언 아담스는 세계적인 팝가수인데, 그런 가수의 공연장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포장이 안 된 흙먼지 투성이 운동장 한 켠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의자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탠딩 공연이었던 거죠.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바닥에선 먼지가 뽀얗게 올라왔고, 사람들은 금세 먼지를 흠뻑 뒤집어썼습니다. 숨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노란 흙먼지가 쉴 새 없이 들어왔던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3, 40대가 브라인언 아담스 팬이었을텐데, 인도는 10대, 20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들 차림새였습니다. 3만 명의 관객 가운데 사리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거리에서는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나 펀자비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만 보였는데, 그 공연장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뱅갈로르에서 먹고 살만한 집의 젊은 친구들은 다 왔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있는 집 자식들은 인도 전통 의상 대신에 리바이스나 리 청바지에 티셔츠와 같은 캐주얼 의상을 즐겨 입습니다. 거기에 나이키나 리복 운동화를 신지요. 공연장을 찾은 젊은 관객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어느 나라나 있는 놈들만 이런 종류의 사치를 즐길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적 일찍 입장한 저와 친구들은 무대 앞 쪽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자가 없었기 때문에 선 채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7시가 넘으면서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고, 우리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공연장이 붐볐습니다. 간혹 텔레비전 카메라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몸이 쏠렸고, 누군가 넘어져서 깔려 죽는 사태가 발생할 것처럼 위태로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옆의 인도 친구들은 숨겨 온 위스키를 ‘병나발’ 불어가며 마셔댔습니다. 술과 땀으로 범벅된 인도 남자 애들의 냄새를 참아가며 7시 반까지 기다렸습니다. 5시 반에 입장을 시켰으니 두시간 뒤쯤에는 공연 시작을 하리라 기대했었죠. 하지만 8시 반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러더니 8시 반부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인도 가수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두 명 나올 때는 ‘양념으로 끼워 넣은 게스트인가 보다’ 하며 참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무명 가수들의 출연이 계속되자 관객들은 ‘우리는 다른 가수 필요 없다, 브라이언 빨리 나와라’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주최측은 철저히 무시하고, 30분 넘게 다른 가수들을 내보냈습니다. 주인공인 브라이언 아담스가 무대에 선 것은 9시 10분이었습니다.

저는 열 받을 대로 받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고, 소리내서 항의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도 사람들 인내심 하나는 정말 끝내더군요. 4시간 가까이 꼼짝도 못한 채 기다리면서도 주최 측에 항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쇼 빨리 시작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옆에 섰던 인도인에게 공연이 이렇게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냐고 물었더니, 비일비재하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친구, ‘그래도 보통은 8시쯤이면 시작하는데 오늘은 왜 늦는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공연 지연에 대한 사과 방송이나 안내 방송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인도인들의 인내심이 바로 이 나라의 잠재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잠재력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와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사에 불만이 없고 잘 참으니 변화와 발전이 더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항의하는 관객들로 인해 공연장은 난리법석이 났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어느 관객이 의자도 없는 먼지 투성이 운동장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서서 기약도 없는 공연을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이런 식의 공연 서비스라면 6백루피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공연이 왜 늦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모두 뒤졌습니다. 공연 기사는 대서특필되었고, 공연이 끝난 뒤에 공연장 근처는 길이 매우 막혔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왜 늦어졌고, 그것 때문에 관객들이 화가 났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저는 공연이 왜 늦어졌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또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 왜 아무도 궁금해 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는지.

그날 이후 저는 브라이언 아담스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인도에서 하는 그런 종류의 공연에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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