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미국5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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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레닌이 자기 공산 혁명의 전략을 논한 팸플릿 제목으로 써서 유명해진 말이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할 때 반드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양의 동서를 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4일 그러니까, 미국 대선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마감한 바로 직후, 막스 부트라고 미국 네오콘의 일원이 로스엔젤리스 타임스에 이런 에세이를 기고합니다. '부시의 확고한, 메킨리 스타일의 승리'. 맥스 부트는 부시의 재선 소식에 휘파람을 불며, 바로 100년 전의 과거를 바로 돌아갔습니다. '조지 부시는 매킨리의 복사판이라고'.

아닌게 아니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매킨리와 여러가지로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매킨리는 미국 제국주의 시대를 연 주인공입니다. 미국 외교 정책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었습니다. 부시가 이라크를 점령했듯이, 매킨리는 필리핀을 점령했습니다. 매킨리의 1급 선거 참모는 마크 한나였는데, 부시의 재선 1등 공신은 칼 로브였습니다. 칼 로브는 평소에 자주 매킨리와 한나를 칭송했다 합니다.

앞서 잠깐 살펴보았지만, 필리핀 점령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상당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벤저민 해리슨 등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반대했고, 당대 최고의 미국 문필가 마크 트웨인(오늘날의 노암 촘스키와 비슷합니다)이 반대했으며, 금융가 조지 소로스가 반부시를 외쳤듯이, 자본가 앤드류 카네기가 맥킨리와 필리핀 점령 정책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필리핀 점령은 맨킨리이 후임자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에 의해 계승됩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니엘 퍼거슨의 새 책 콜로서스는 당시의 정황을 잘 알려줍니다. 미국의 필리핀 합병 논리는 해방과 자유, 그리고 민주였습니다. 일본 카스라 총리와 밀약을 맺었던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는 '미국의 주권은 필리핀 해방의 또 다른 이름름'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테프트가 미국 최고의 법률가 중 한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연방최고법원 판사 자리를 노릴 정도로 당대의 1급 법률가였습니다.

해방의 논리. 그것은 스페인 통치로부터 필리핀을 구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은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합병 과정에 들어갑니다. 해방의 날을 기다리던 필리핀인들은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 인물이 에밀리오 아기날도였답니다. 저항이 거세지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잔혹한 진압 작전에 나섭니다. 제이콥 스미스라는 군인 이 작전을 책임졌습니다. 그는 자기 군대에게 명령했답니다. '나는 제군들이 죽이고 불태우기 바란다.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태울수록 제군들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I wish you to kill and burn, the more you kill and the more you burn the better you will please me). 이래서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미군이 4천명 죽고, 필리핀 독립군은 그 네배가 죽었답니다(여기에 민간인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죽였다'는 표현은 다소 부적합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숱제 도륙 내지 살육입니다.

그 다음 필리핀 합병 정책을 계승받은 루즈벨트는 한 술 더 떴습니다. 퍼거슨의 설명에 따르면, 루즈벨트는 한때 필리핀인들을 아파치에, 독립운동 지도자 아귀날도를 '시팅 불'(미국에 맞섰던 유명한 아파치 추장입니다)'에 비유했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필리핀 독립에 대한 약속이 필리핀인의 강고한 저항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니라, 미국내 다양한 이익 집단의 의회 로비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필리핀 점령에서부터 독립 약속까지는 약 20년이 걸렸습니다. 필리핀 독립을 약속한 것은(약속만 했습니다) 1916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존스 법안이었습니다.

그럼 이처럼 장구한 기간 미국은 필리핀에서 무엇을 했는가. 현재의 이라크 상황고 똑 같습니다.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좋은 정부의 출현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명제가 바로 필리핀 합병 시기 때 도출됐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직접 통치하지는 않았습니다. 퍼거슨은 강조합니다. '우선 그것은 친미 정부를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미국 식 정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퍼거슨은 바로 이 때부터 '민주주의를 지령하고, 자유를 강제하며, 해방을 강요하는(dictating democracy, of enforcing freedom, of extorting emancipation)' 역설이라는 100년 이상 지속된 미국 외교 정책의 주된 특징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1905년 조선 정부가 을사늑약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미국에 그 부당성을 호소하고 원조를 갈망했을 때, 미국의 '민주와 문명'을 앞세운 외교 정책은 이미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앞날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산의 실체를 조선은 파악하지 못하고, 그 산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만을 염원했습니다. 조선은 당시 조선의 힘으로 어쩔수 없었던 산을 우회하는 길을 찾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무지해서, 너무도 세상 물정 몰라서 그랬다 치고, 그로부터 백년이 흘러 맥스 부트의 비유대로 100년 전의 복사판 형세가 펼쳐지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른바 단극 시대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극성세기가 만약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큰 물줄기라면, 중요한 것은 이 큰 물줄기가 한반도를 덮치지 않도록 단단히 예방 대책을 세워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우리의 정치 엘리트들이 둑 쌓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둑이 터지네, 안터지네, 네가 쌓을래 내가 쌓을래 다툼이나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입니다. 백년 전의 교훈. 조금 먹고 살게 됐다고 그 쓰라린 과거를 잊는 순간, 조선 반도의 미래도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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