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뛰어넘어 소렌스탐 잡는다.
  • 문승진 (골프 전문 기자) ()
  • 승인 2005.01.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4년 KLPGA 4관왕 송보배 선수
“움츠렸다가 뛰는 개구리가 더 멀리 뜁니다.” 커다란 눈망울에 복스러운 얼굴, 해맑은 웃음. 2004년을 최고의 한 해로 보낸 ‘슈퍼 루키’ 송보배(18·슈페리어)의 인생관이다.

송보배는 항상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쳐난다. 올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송보배는 신인왕·다승왕·상금왕·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보배의 시대’를 열었다. 송보배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기다림을 아는 여자

송보배는 느림의 철학을 믿고 있다. 송보배는 올 시즌 국내 골프 그린을 평정했다. 국내 그린이 작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송보배는 “남들은 해외 진출을 시도하라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목표는 결국 세계 정상 등극이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송보배는 올해에도 국내 투어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다 이루어 왔다는 그녀는 “해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올해에도 신인의 자세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보배는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J나인브리지클래식에서 다크호스로 주목되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송보배가 누구보다도 변덕스러운 ‘제주도 골프’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지난해에 이어 LPGA무대 직행 티켓까지도 거머쥘 것으로 내다보았다. 송보배는 2·3 라운드에서 71·67타로 ‘언더파 행진’을 펼쳤다. 하지만 첫날 76타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합계 2언더파 214타로 공동 33위에 머물렀다. 주위에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본인은 오히려 담담했다. 송보배는 “일본·미국 등 해외에는 반드시 진출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 진출하느냐보다 가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녀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송보배는 이미 예고된 스타였다. 제주 서귀포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의 영향으로 골프에 입문한 송보배는 시작부터 가능성을 보였다. 특히 강한 승부욕은 그녀에게 성장 촉진제가 되었다. 1999년 서귀포 중앙여중 1학년 때 첫 대회에 출전한 것을 잊을 수 없다는 송보배는 “이름도 가물가물해진 이 대회에서 첫 번째 홀 티샷을 하면서 너무나 힘들었다. 골프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알게 됐다. 골프가 이렇게 힘든 스포츠인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왕 시작한 만큼 세계 최고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2001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송보배는 아·태 주니어골프선수권 개인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2003년에는 퀸시리키트컵 아시아여자아마추어선수권 개인·단체에서 우승한 데 이어 네이버스컵 국가대항전에서는 개인전 준우승·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전(12월4∼5일)에서는 ‘일본 여자 골프의 희망’ 미야자토 아이(19)가 대회 내내 “송보배와 맞대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올해 5승을 챙기며 상금 1억 엔 시대를 연 미야자토이지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송보배와 두 번 맞대결해서 모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자기 주장 뚜렷하고, 지고는 못살아

송보배의 진가는 성인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송보배는 2003년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오픈에서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전해 박지은(25·나이키골프), 한희원(26·휠라코리아)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우승해 돌풍을 일으켰다. 이 때부터 박세리·박지은을 능가할 ‘물건’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 6월 프로를 선언한 송보배는 또다시 한국여자오픈을 석권하며 2003년의 돌풍이 결코 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또한 2004년 9월에 열린 SK엔크린인비테이셔널에서 한국여자골프대회 사상 최고액인 우승 상금 1억원을 거머쥐며 큰 경기에 더욱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녀의 우승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송보배는 주장이 뚜렷하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죽어도 안하는 성격이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누가 말려도 한다. 밤새도록 골프 클럽과 씨름하기도 하지만, 자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클럽을 만지지도 않는다. 송보배는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누가 뭐라고 하면 하기 싫어진다. 초등학교 때도 하기 싫은 숙제는 안해 매일 손바닥을 맞았다”라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좋은 옷도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는다. 송보배는 “명품 옷을 거저 입으라고 해도 내가 싫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송보배의 승부욕은 남다르다. 성적을 떠나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면 잠을 자지 못한다. 송보배의 아버지 송용현씨(50)는 “어려서부터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다. 네 살 위인 오빠하고도 한번 싸우면 끝장을 본다. 호랑이띠(1986년)니 오죽하겠냐”라며 웃었다.

송보배는 약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울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조용히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넓은 제주 바다를 보며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최선을 다한 경기는 결과를 떠나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송보배는 “사람이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욕심내면 오히려 해가 된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성격을 ‘쿨(cool)’하다고 말하는 송보배는 “사람이 살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단언한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해 송보배는 이제 여엿한 여대생이 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