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더 반가운 추어탕 한 그릇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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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혼하기 전까지 20년을 살던 곳은 서울 대광고등학교와 그 옆의 안암교(옛날부터 살던 분들은 그 다리를 안감내다리라고 불렀다) 부근이었다. 그 안암교 부근에 ‘곰보추탕’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건 음식점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추탕’이란 희한한 말에 ‘곰보’까지 붙어 있는 이 이름이 신기해 보였는지,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 추탕집이 아주 유명한 곳이고, 서울 지방에서는 추어탕이란 말 대신 ‘추탕’이라는 말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은 아주 최근에야 알았다.





추어탕을 먹어본 것은 대학 졸업여행으로 남원에 갔을 때였지만, 맛이 제대로 기억나도록 먹은 것은 결혼 후였다. 엄마는 추어탕을 끓일 줄 몰랐는데, 아버지는 박(호박이 아니라)을 넣고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인 서울식 추탕 이야기만 해서 엄마는 애초부터 추탕 같은 것은 만들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단다. 그러니 나는 서울내기지만 추어탕 입맛은 시댁 분들을 따라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바로 이 즈음이 미꾸라지를 먹을 철이다.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기 직전이니 영양분도 가장 많다. 여름철 미꾸라지는 풀 같은 것을 먹어서 잘못하면 씁쓸한 맛이 강한데, 요즘 것은 그렇지 않다.


추어탕집에서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을 함께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내 입맛에는 너무 양념이 강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미꾸라지를 사다 직접 끓인다. 산 미꾸라지를 사다가 비닐 봉지에서 꺼내지 않은 채로 그 안에 소금을 한 줌 뿌린다. 그러면 그 녀석들이 완강하게 퍼덕이면서 저희들끼리 소금을 다 묻힌다. 그대로 한참 두면 죽어서 얌전해지는데, 그 과정에서 민물고기의 해금내 같은 것을 점액질과 함께 다 뱉어 놓는다. 미꾸라지는 내장을 빼지 않고 통으로 끓이는 것이라,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다음 과정이 가장 힘든 일이다. 점액질 투성이인 그 미꾸라지를 씻는 일이다. 수도꼭지 아래 서너 마리씩 손에 쥐고 싹싹 문질러 점액을 웬만큼 씻어놓는다. 그 미꾸라지를 냄비에 앉히고 푹푹 삶는데, 그때부터 벌써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숟가락을 대면 살이 물컹거려 흐드러지도록 푹 삶아야 한다. 미꾸라지는 참 맛있는 물고기여서, 물고기로는 얼마 안되는 것 같아도 끓여놓은 국물 한 냄비가 쇠고기 국물 못지 않게 달착지근하고 부드럽다.


여기에 된장과 온갖 야채를 넣어 끓이면 추어탕이 되는 것인데, 징그러운 건더기 모양이나 가시가 씹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삶은 미꾸라지를 믹서에 갈아서 국을 끓이면 된다. 추어탕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통 미꾸라지탕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야채는 집집마다 넣는 것이 좀 다른데, 나는 시어머니께 배운 대로 얼갈이배추 데친 것, 숙주나물 삶은 것, 그리고 고사리 삶아 다듬은 것 약간을 넣는다. 된장으로 간을 하여 야채들이 뭉큰해질 때까지 끓이다 파·마늘을 넣으면 추어탕은 완성된다. 육개장처럼 뭉큰한 야채 맛이 일품이지만, 벌건 고기 국물이 아닌 된장과 민물고기가 결합된 부드러운 맛이라 맛으로는 한결 낫다.


먹을 때에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다. 빨간 고추와 풋고추 다진 것과 산초가루를 마지막에 넣는다. 산초 향내가 싫은 사람은 후추를 넣지만, 그래도 경상도식 추어탕에는 역시 향긋한 산초가 들어가야 제맛이다. 짜고 맵지 않게,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추어탕은 서너 끼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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