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국 맛있게 끓이기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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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언제 가려나 했는데, 벌써 말복이다. 말복이 지나면 해수욕을 하거나 계곡 물에서 첨벙거리기는 힘들어지니, 이제 여름도 끝이 보이는 셈이다. 삼복이 지나가는 것을 자축하며, 개고기 이야기는 한 번 하고 넘어가야겠다.



개고기 논쟁을 하다 보면 개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종자가 다른 것처럼 싸우게 되지만, 그것은 개고기를 이상스럽고 별난 음식으로 여겨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고기 역시 그냥 평범한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별한 혐오 식품이 아닌, 그냥 음식인 것이다.






나도 개고기를 처음 먹어본 것은 결혼한 이후였다. 결혼한 지 한두 해 지났을 때인가, 시댁 식구들끼리 모이는 어느 여름날 별식으로 개고기를 끓여 다섯 살 난 조카까지 온 식구가 맛있게 먹었다. 그때 먹어보니 그냥 음식일 뿐이었다. 그 뒤로는 종종 전골 같은 것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고, 급기야 개고기를 직접 집에서 끓여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집에서 개장국을 끓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이 역시 편견의 소산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개장국은 그냥 보통 음식이다.



개고기 요리는 결코 까다로운 요리가 아니다(오죽 쉬우면 계곡에서 남자들끼리 끓여 먹었을까). 단 한 가지 어려운 점은 고기를 잘 사는 것뿐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개 요리 역시 재료가 맛있어야 하는데, 합법적으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싱싱하지 않은 고기를 살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남 모란시장 같은 큰 시장에 가서 살아 있는 개를 그 자리에서 잡아 오는 것인데, 그러려면 한 마리를 한꺼번에 먹을 정도로 ‘멤버’가 모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소줏집 같은 데에서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개고기가 다른 고기와 근이 다르다는 것은 상식이다. 쇠고기·돼지고기는 한 근이 600g이지만 개고기만 야채처럼 375g이다. 여름에는 근당 가격이 만원에 육박하니 엄청나게 비싼 고기이다.



큰 들통이나 가마솥에 개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대여섯 시간 푹 삶으면 조리 끝이다. 단 냄새를 없애기 위해 처음부터 생강과 된장, 토란 줄기 삶은 것을 함께 넣어 끓여야 한다. 나물로도 볶아 먹고 육개장에 넣기도 하는 토란 줄기 삶은 것은 희한하게 고기 누린내를 깨끗이 없애 주는데, 어떤 사람들은 개 냄새가 너무 안 나서 맛이 없어진다고 꺼리기도 한다. 살이 물컹하게 삶아졌으면 일단 고기 건더기를 건져서 수육으로 먹기 시작한다. 이 수육은, 음식점에서 양념을 많이 해서 끓이는 전골에 비해 담백하고 연한 개고기의 진미를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수육을 찍어 먹는 양념은 좀 독특하다. 들깨가루, 고추반죽양념이나 고추장·겨자·들기름, 식성에 따라서 식초나 마늘 다진 것을 넣기도 한다. 쇠고기·돼지고기는 뒷다리가 맛없고 닭은 가슴살이 퍽퍽하지만 개고기는 모든 부위가 다 부드러우면서도 기름기가 없어 아주 맛있다. 그래도 개고기 마니아라면 쫄깃한 껍질을 즐기는데, 초심자들이 흐물거리는 개 껍질 먹기를 망설이는 듯하면 “안 먹으면 나 줘” 하며 냉큼 빼앗아 간다.



먹고 남은 수육을 남은 국물에 넣고, 파·마늘·부추·깻잎 순을 숭숭 썰어 넣고 살짝 끓여 내어놓으면 그게 개장국이다. 이렇게 수육 먹고 개장국에 밥 말아 김치 얹어 먹으면 배를 퉁퉁 두드릴 정도로 포식하게 된다.
애독자 여러분! 어느 요리책에도 개고기 조리법은 없을 테니, 이 페이지를 고이 간직하시고, 꼭 한 번 실천해 보시길.



이영미의 음식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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