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간장 없이 음식을 하세요?
  • 이영미(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늦가을 김장에 비견할 만한 봄의 대사(大事)는 장 담그는 일이다. 40대인 우리 세대에서 장 담그기는 거의 맥이 끊긴 듯하다. 30대로 내려가면 김치 담그기가 거의 ‘실종’ 상태다. 모두 제품화한 것을 쓰고 있다. 그런데 김치도 그렇지만 장도 상품화한 것으로는 음식의 제 맛을 내기 힘들다. 왜간장은 다양한 상품이 나오고 있지만 메이저 회사들이 조선간장은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조선간장을 쓰지 않고, 그냥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이런 분들께는 매우 미안한 말씀이지만, 조선간장을 쓰지 않으면 음식 맛이 좀 천박해진다. 우리나라 국 가운데 소금으로 간을 하는 건 콩나물국과 곰탕 계열뿐이다. 나머지는 조선간장을 써야 하고, 그 외 된장이나 젓국을 쓰는 게 몇 종류 있다. 특히 미역국은 조선간장과 소금 간의 차이가 천양지차이다. 나물 볶는 데에도, 장아찌나 간장게장을 담그는 데에도 조선간장은 필수이다. 이런 기본 양념 없이 소금만 쓰게 되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니, 자꾸 화학 조미료나 복합 조미료(다시다·감치미 등)를 쓰게 되고, 음식 맛은 점점 얕아진다. 재료를 넉넉히 쓰고 양념을 조선간장으로 하면 화학 조미료는 거의 쓰지 않게 된다.


장 담그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단, 메주는 있어야 한다. 요즘은 메주를 시장에서 다 파니, 내년쯤에는 용기를 내어 딱 한 덩어리만 사다가 시험적으로 해보기를 바란다(단, 해가 쨍쨍 드는 곳이 있어야 한다). 내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올해 간장 담그는 철은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장 담그는 철은 음력 정월 말∼2월 초이니, 양력으로는 2월 말∼3월 초·중순까지이다.


겨우내 잘 띄우고 말린 메주를 물로 살살 닦아 겉의 먼지나 곰팡이 같은 것을 떨어낸 후, 소금물에 띄워놓기만 하면 된다. 소금물의 농도는 달걀을 띄워서 물 위에 나오는 부분이 오백 원짜리 동전 정도 크기로 뜨면 되는데, 싱거운 건 장이 상해서 안되지만 좀 짠 건 괜찮다. 굵은 소금을 물에 풀어, 검은 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가만히 윗물만 따라 쓴다. 숯과 마른 고추를 띄우면 더 좋다. 그리고는 햇볕을 쬐면서 놔둔다. 요즘은 유리 항아리뚜껑이 나와서 장 항아리 관리하기가 아주 편해졌다.


그렇게 여섯 주 정도 지나 4월 중·하순이 되면 소금물이 맑은 간장 색으로 변한다. 이때 메주를 건져 된장을 담근다. 메주를 건지고 난 뒤 남은 장을 냄비나 들통에 옮겨 끓여(이게 바로 장 달이는 것이다)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면 완성이다.


달인 간장은 다시 그 항아리에 옮겨 담아 간간이 햇볕을 쬐며 놔두고 먹는데, 장마철에 상하지 않게 관리하면 몇 년도 괜찮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항아리 속 간장이 천천히 움직이며 돌면 상한다는 징조이다. 그대로 놔두면 써져서 장을 버리게 되므로, 번거롭더라도 다시 달여야 한다.


장에서 건진 메주는 그대로 으깨어 작은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냥 된장이 된다. 하지만 더 맛있는 된장을 먹으려면 이때 재료를 첨가하는 게 좋다. 즉 이 메주는 간장을 뺀 것이므로 콩의 맛이 상당히 빠져나간 것이다. 그러니 새로 콩을 푹 삶아(메주보다 적은 양이어야 한다. 콩만 넣기가 불안하면 메줏가루를 사다가 같이 섞으면 안전하다) 건진 메주와 소금을 섞어 항아리에 담고 표면을 다독다독 해놓는다. 좋은 햇볕을 쬐며 놓아 둔다. 첫 해에는 메주 냄새만 나고 맛이 없다. 참을성 있게 두 해 겨울을 묵히면 신기하게도 맛있어지는데, 얕은 맛의 제품화한 된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장맛은 미생물들이 오래오래 만들어내는, 정말 깊은 시간의 맛이다.


이영미의 음식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